에스엠카지노의 욕망은 좋았는데

에스엠카지노의 도입부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리얼리티 TV 쇼에 출연한 리포터가 수상한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소방관을 따라갔다가 좀비가 출몰하는 저택에 갇히게 되는 모습을 그리는데, 인간이 인간을 구출하러 가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상황은 당국의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시작되면서 인간을 보호하던 '집'과 '제도'의 의미를 일순간에 정반대로 바꾸어 버리기에 이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에스엠카지노는 좀비 영화에서 드러나는 폐쇄성의 공포가 '인간에 의한 공포'라는 점이다. 더구나 그것은 좀비가 되지 않은 생사람인 인간 내면에 날것으로 '내장돼 있는' 것이며, 우리가 의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큰 공포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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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 REC >에서도 공포의 주체는 좀비이지만, 결말부에서 미치광이 과학자의 음흉한 암막으로 끌려가는 리포터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애초에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 생사람의 의지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좀비의 공포가 일상의 전환에서 비롯된다면 반대로 일상은 언제나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를 잠재적 위험이 된다. 좀비 자체도 본래는 사람이었고, 좀비로 인해 공포의 공간이 된 장소들도 모두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 선의와 정의로 가득해 보였던 어떤 이들의 주장도 실은 언제든지 칼날로 뒤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에스엠카지노를 즐기는 것도 단순한 쾌락과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역시 영화가 묘사하는 곳과 같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비 영화를 통해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암시 속에서 내내 속으로 인간에게 품었던 불안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그로부터 탈출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낀다. 최근 개봉작 ' 살아있다 '2020) 역시 폐쇄성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내세우며 사람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더구나 이 작품은 돌변한 폐쇄적 공간으로부터 막연히 탈출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버텨나가는 인간을 그림으로써 예비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좀비 영화에서 인간의 기대를 배신하는 벽과 집은 이 작품에서 다시 보호의 공간으로 환원된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에스엠카지노만큼은 이 작품이 독창적인 영역을 구현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더구나 이 작품은 폐쇄성을 다루기는 하지만 영화 ' 28일 후 '2002)처럼 광장 탈출 장면을 넣어 개방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좀비 영화에서의 폐쇄성이 그렇듯, 개방성도 벽이나 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정반대의 의미로 뒤트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폭력적 의지가 충만한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는 제한된다. 아무리 드넓은 공간에 있더라도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의 폭력성을 경계하느라 신체는 극도로 위축되며,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가진 광야는 위협의 가능성으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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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폐쇄성과 개방성을 아우르는 좀비 영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로부터의 공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다룬다고 볼 수 있는데, ' 28일 후 '에서도 처음에 주인공들은 폐쇄성에 가로막혀 좀비들 자체에 공포를 느끼지만, 광장이 있는 군영에 다다랐을 때는 미래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군인들에게 공포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 살아있다' 역시 폐쇄성과 개방성을 오가며 공포를 발견하지만, 이 에스엠카지노는 특히 그 사이에 청년이라는 주체를 끼워 넣음으로써 이들이 겪는 공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주목하려 하고, 항상 그 공포의 중심에는 영화의 배경이 된 '아파트'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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